1989년 4월21일, 창덕궁 낙선재에서 조선의 마지막 왕녀 ‘덕혜옹주’가 78세로 세상을 떠났다.
멸망한 나라에서 피어난 ‘덕수궁의 꽃’ 덕혜옹주는 한때 조선 민중의 희망이었으나, 일본의 계략에 의해 조국에서 철저하게 외면당한 비운의 왕녀였다. 그녀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저항은 오로지 침묵뿐이었다. 그녀의 인생은 우리 근대사가 치른 고통 그 자체였다.
- 조선의 마지막 왕녀 태어나다
1912년 봄, 고종이 환갑의 나이에 궁녀 양씨 사이에서 늦둥이 딸, 덕혜옹주를 얻었다. 아버지의 마음은 애틋했다. 50일 된 딸을 자신의 거처인 함녕전으로 데려왔고, 다섯 살이 되던 해에는 덕수궁의 즉조당에 유치원을 세워주기까지 했다.
그러나 조선 왕족의 힘을 말살시키려는 일본에게 딸을 빼앗길까 두려웠던 고종. 비밀리에 덕혜옹주의 약혼을 추진하는데...
- 고종의 죽음, 파란만장한 일본에서의 생활
그러나 덕혜옹주 8살 때 고종이 의문의 죽음을 맞이하고 이에 격분한 조선민중들이 3.1운동을 일으키자 일제는 조선왕실에 대한 통제를 강화했다. 14살에 강제 일본유학을 간 덕혜옹주는 항상 독살을 두려워했고 20살에 일본남자와 정략결혼을 하면서 조선민중의 지지와 사랑도 잃었다. 조발성 치매증(정신분열증)을 앓고 있던 덕혜옹주는 일본 패전 후 남편에게도 버림받고 정신병원 생활을 해야 했다.
- 덕혜옹주 37년 만의 귀국
1962년, ‘의식 없는 몸’을 이끌고 덕혜옹주가 한국에 돌아온다.
37년 만의 조국 땅이었다. 그리고 그녀는 삶의 마지막을 창덕궁 낙선재에서 지냈다. [한국사 傳] 제작진은 덕혜옹주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곁에서 모셨던 이공재씨를 만나 특별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. 옹주가 귀국하고 10여 년이 지난 후 옹주의 옛 남편 소오 타케유키가 그녀를 찾아왔다는 것이다.
그는 왜 다시 찾아왔을까?
- 고종의 증손녀, 이홍씨가 덕혜옹주 역을 맡아 재연
고종의 아들 의친왕의 손녀로, 고종의 증손녀인 이홍 씨가 직접 덕혜옹주 역을 맡아 덕혜의 비극적인 삶을 재연, 오직 그녀만이 할 수 있는 연기를 선보였다. 또한 직접 스튜디오에 나와 집안에서 전해지는 덕혜옹주의 정신병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.
- 덕혜옹주의 삶을 목격한 사람들의 생생한 증언
일본 여자학습원 시절 덕혜의 학급 친구 소마 유키카씨, 덕혜옹주의 정신병을 직접 목격하고 기록한 히라야마의 후손 혼마 야스코씨, 낙선재에서 마지막까지 덕혜옹주를 모셨던 이공재씨 등 덕혜옹주가 전 생애에 걸쳐 함께 했던 사람들의 살아있는 증언을 직접 들어봤다.
한국사전 8회 – 라스트 프린세스 덕혜옹주 (.방송)